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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초분자」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초분자란 공유결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수소 결합, 정전기적 상호작용, 반데르발스 인력 등 분자들의 상호 작용으로써 둘 또는 그 이상의 작은 분자들이 모여 생성된 거대한 분자를 말합니다.
    초분자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분자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조립」입니다. 분자 인식은 분자들이 자기 짝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 보여지는 효소와 기질, 항원과 항체 간의 상호 작용처럼 특정한 상대와만 선택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도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조립은 간단한 부품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모여 초분자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나 페리틴에서와 같이 단백질 단위체들이 모여 특정의 구조와 기능을 갖는 생명체를 형성하는 것은 자연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기조립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초분자의 연구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배운 이 분자인식과 자기조립 원리를 이용하여 우리가 원하는 구조 및 성질을 갖는 인공의 초분자를 구상하고 제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은 현재 나노미터 크기의 기계 이른바 「분자 기계」를 제조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반도체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장치를 작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리콘 소자의 크기를 마이크로미터 단위 이하로 줄이면 소자 사이에 전자 터널링 현상이 일어나고, 전하를 전달해주는 입자 (전자 또는 양자)의 양자역학적인 갇힘 현상으로 인해 도체로서의 성질이 변형되며, 발생열을 방출하기가 어려워져 소자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크기를 줄여나가는 「엔지니어링 다운 접근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자로부터 출발해 기능성을 갖는 장치를 제작하려는 「엔지니어링 업 접근 방식」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분자 크기만한 소자를 만들려면 「분자 스위치 또는 「분자 기억장치」가 필요합니다. 이 분자 스위치 등은 가역적으로 읽어낼 수 있고, 분자 수준에서 조절 가능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초분자 화학의 모든 원리를 잘 이해해야 하며, 이를 응용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작은 분자들을 이용해 원하는 구조와 기능을 갖는 초분자 물질을 만들기에 지식이 충분치 않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분자들 사이의 인력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해, 원하는 초분자를 형성할 수 있는 부품들을 설계한다는 것이 지금 현재로는 거의 불가능한 형편입니다.
    다행히 생체 내에 존재하는 진보된 형태의 초분자들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효소, 항체, 수용체, 운반체, 채널, 생체막 등 생체 내의 초분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반데르발스 인력, 수소 결합, 소수성 상호작용 등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들에 대한 이해는 초분자를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역으로 초분자 화학에 대한 연구는 자연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하는 기초자료를 제공할 것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계산화학의 발전, 컴퓨터 성능의 획기적 향상 등에 힘입어 21세기에는 「원하는 구조와 기능을 가지는 초분자」를 설계하고 합성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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